시대와 상황을 달리하며 작품에 대한, 작가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시인 가운데 ‘오장환’ 역시 그런 작가였고 작품이었다.
이제 우리는 1930년대를 살았던 시인들 - 이상화, 오장환, 백석의 시세계를 통해 미흡하나마 우리만의 시각을 보태어 살펴보고
시인의 시와 비교해 봄으로써 고찰해보려고 한다.
또한 신동엽의 시는 그 특성상 뚜렷하게 주제 파악이 가능하므로 여러 가지로 해석되기 힘들다. 그래서 현재 그 연구가 크게 활발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연구를 돌아보면 그 시세계는 민족적, 신화화, 낭만화, 공동체적 이상화로
시인의 것이다. 초기 시에 해당되는 시편들로는 <말세의 희탄>,<이중의 사망>, <그날이 그립다>, <쓸어져 가는 미술관>, <단조>, <가을의 풍경> <환몽병>, <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이 중 <나의 침실로>는 이상화의 낭만적인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의 초기시의 특질을 가장 성공적으로 드러내고
시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시적 주체가 자신을 재구성하는 탐색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사실 시적 주체 ‘나’는 현실의 속악함을 거부하면서 이에 대립되는 세계를 설정하여 그 안에서 화해를 모색하려는 자가 아니다. 또, 아무 것에도 얽매이거나 가로막히지 않으
시의 사회적 변화상 수용 연구 :1920년대 시를 중심으로 」, 중앙대학교 석사논문, 2004, p,8.
그 가운데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쳐 주관세계만을 표현하였으므로 자연히 소설보다는 시가 낭만주의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2) 한국과 서구 낭만주의 비교
이처럼 다른 양상으로 형성된 서구와 한국
연구가들의 지배적인 주장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그가 생존하였던 1901년부터 1943년까지의 괴로웠던 시대 상황이 그의 작품과 의식세계에 어떤 영향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그 동안 많은 선행 연구가들에 의하여 이러한 그의 시의 경향은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그가 1922년 「백조
시 창작하자는 데 그 목표로 삼고 현대 시조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게 했다. 이병기, 이은상 등이 가세한 시조부흥운동은 시조 시학을 성립하여 시조의 시적 창작 활동을 활발히 했다. 특히 이병기는 시조를 하나의 문학 형식으로 인식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전통 시조 연구에 새로운 시야를 제
썼습니다. 괴테는 또한 과학자였으며 식물학, 해부학 및 광학 분야에 상당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문학계와 정치계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의 독자와 학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고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연구에 몰두했으나, 완성치 못하고 1943년 3월 21일 사망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공원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17년 대구에서 현진건(玄鎭健)‧백기만 등과 프린트판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1922년 홍사용(洪思容)‧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김기진(金基鎭) 등과 함께 『백
근대시는 그동안 한시가 겪어야 했던 진통을 해결하는 동시에 한시에서 얻은 성과를 새롭게 계승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졌다. 교술적인 성향을 배제하고, 서정시의 본령을 충실하게 구현해야만 했다. 자아를 세계화하는 교술시는 가고, 세계를 자아화하는 서정시만 남은 것이 근대시의 기본 양상이다.